안녕하세요,
오늘은 수능특강 중 작자 미상의 고전수필 산성일기 작품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능특강의 작품의 주제 내용은 병자호란 치욕 입니다. 그럼 상세한 내용은 밑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작자 미상의 고전수필 산성일기
작자 미상의 고전수필 산성일기 해석 해설
작자 미상의 고전수필 산성일기 해석 해설입니다.
산성일기(山城日記)
저자 미상의 고전 수필로, 병자호란 때(인조 14년(1636) 경으로 추정)의 남한산성에서의 전쟁 체험을 한글로 기록한 내간체 실기(實記)이자 수필입니다.
핵심 정리
갈래: 한글 수필, 일기체 수필, 궁중 수필
성격: 사실적, 기록적
문체: 산문체, 서사적 일기체, 내간체
표현: 간결하고 중후한 궁중어 사용
제재: 병자호란 당시의 전쟁 체험
주제: 병자호란의 치욕과 남한산성에서의 항쟁
의의:
병자호란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한글로 기록한 유일한 작품
계축일기와 함께 국문학사상 쌍벽을 이루는 일기체 작품
구성
도입부
청 태조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용호 장군이라는 이름을 얻고 우리 나라를 침략해 와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란 가는 과정을 설명
중심부
병자년, 곧 1636년 12월 12일 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637년 1월 30일, 임금이 세자와 함께 청의(靑衣)를 입고 서문으로 나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48일 간의 일을 기록
종결부
그 이후 3년 간의 일을 짧게 요약
이해와 감상
산성일기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의 전쟁 체험을 한글로 기록한 내간체 실기(實記)이자 수필입니다. 이 작품의 작가와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남한산성에서의 일을 꼼꼼히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인조를 가까이서 모시던 궁녀가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50여 일을 산성을 지키며 항전하던 비참한 모습이 생생히 나타나며, 굴욕적인 외교의 일면과 암울했던 역사의 이면(裏面)을 일기 형식을 빌려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하여 당시의 처절했던 정황과 통분의 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룬 병자록이나 남한일기와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어 역사 기록으로서도 의의가 크며,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사건을 서술하여 통분한 심정을 더욱 여실하게 드러내어 수필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작품입니다.
문학적 가치
이 작품의 기록 문학적 가치는 병자호란을 기록한 유일한 한글 일기라는 점, 개인적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필치로 병자호란 당시의 모습을 보여 준 점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임진, 병자 양란의 문학들이 빠지기 쉬었던 비현실적 감정이 제거되고, 조선의 미약한 힘과 등장 인물들의 인간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냉철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같은 전쟁의 기록이면서도 야담보다 사실적, 구체적인 필치를 보여 주어 기록 문학으로서 돋보입니다. 특히,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의 심정 등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병자호란의 역사적 사실
인조 14년(1636)에 청 태종이 사신을 보내 군신(君臣)의 관계를 강요했습니다. 인조가 이를 거절하자 청 태종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재차 쳐들어왔습니다. 인조는 처음에 강화로 피하려다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했습니다. 이 때, 성 안의 군사는 겨우 일만 삼천이었습니다. 청 태종이 성을 포위하고 위협하며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냈으나 인조는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강화도의 함락으로 상황이 악화되자 주화파(主和波) 최명길의 의견을 좇아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에서 항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의 두 왕자가 인질로 잡혀갔으며, 척화파(斥和波)인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이 화의를 반대한 죄로 청나라로 붙잡혀 가서 죽었습니다. 이로써 조선은 오랜 대명(對明) 사대(事大)의 예를 끊고, 청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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